신원교 발행인 / 대기자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만 해도 한반도는 기록적인 폭우와 폭염을 번갈아 겪었다.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과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탄소정책은 여전히 선언과 홍보에 갇혀 있다.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을 국가 목표로 내세우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 통계를 보면 실상은 다르다. 환경부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6억 2천만 톤으로,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OECD 국가 중 상위권이다. 특히 산업·수송 부문에서의 감축은 거의 정체 상태이며, 석탄발전 비중은 여전히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와 산업 구조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히지만, 실행력은 미흡하다. 재생에너지 비율은 2024년 기준 전체 발전량의 약 8%대에 머무르며, 이는 OECD 평균(약 30%)의 3분의 1 수준이다. 지역 갈등과 인허가 지연, 그리고 에너지 공기업의 소극적 대응이 발목을 잡고 있다.
반면,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55% 감축하는 ‘Fit for 55’ 정책을 추진 중이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을 도입해 수출국의 탄소배출까지 규제하고 있다. 일본 또한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X)’ 전략을 통해 기업의 탄소저감 투자를 세제 혜택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탄소정책은 산업계 눈치 보기와 단기 성과 중심의 행정에 갇혀, ‘감축이 아닌 관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업들의 ESG 경영 역시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일부 대기업은 탄소배출권을 매입해 ‘감축 달성’으로 포장하거나, 실질적 감축 없이 재생에너지 인증서(RE100) 확보에만 몰두한다. 탄소중립은 돈으로 사는 면죄부가 아니라, 생산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신이어야 한다.
이제 정책은 구호가 아니라 책임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는 산업 전환을 지원하되, 감축 목표를 흔들림 없이 이행해야 한다. 기업은 단기 비용이 아닌 장기 생존의 관점에서 에너지 구조를 바꿔야 한다. 시민사회 역시 소비의 방식과 생활습관을 바꾸는 ‘탄소 시민의식’을 세워야 한다.
탄소중립은 국가의 자존심이자 미래 세대와의 약속이다. 지금처럼 선언만 요란하고 실행이 없는 정책이라면, 한국은 2050년에 ‘탄소중립 국가’가 아니라 ‘기후 실패국’으로 기록될 것이다. 탄소 감축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늦출 수 있는 여유는 이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