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난히 왜(Why)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가정에서 사회생활까지 언제 어디서나 일상이 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물의 생각과 행동에는 원인, 즉 왜? 라는 이유가 항상 존재한다. 이중 인간은 왜라는 질문이 용인되고 해소되는 가정이나 사회가 진정 화목한 가정, 소통 사회가 아닐까 한다.
아울러 토론과 논쟁에서 왜라는 질문에 대해 당당히 대답하고 이해시키며 설명하는 문화가 선진 사회이고, 특히 지도자나 공직자는 반드시 인지하고 실천해야 한다.
* 작은 내용, 행동 하나하나가 사회 분열을 막고 단결하게 하는 초석이 된다.
진실을 왜곡하거나 거짓을 정당화하는 것은 정의의 가치관을 혼란케 한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정의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며, 세상의 많은 불의는 정의를 소홀히 눈 감았을 때 시작된다”라고 어느 서양 철학자가 말했다.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 내에 경제발전과 민주사회를 이룩한 유일한 나라라고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처럼 질투와 경쟁심이 많으나, 때로는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인정과 희생정신이 많은 나라임은 틀림없다.
또한 10억 명의 중국 국민이나 수백 만의 중국 군인이 못한 일을 윤봉길 의사 한 사람이 용기를 내 해결한 것을 보면 불의를 못 참는 민족이기도 하다.
작금의 정치적 분열 사회를 맞이하면서 토론의 나라 이스라엘처럼 왜라는 질문에 대소를 막론하고 정확히 답하고 경청하고 토론하여 ‘훌륭한 대안을 만들자.’라고 주장을 하고 싶다.
정치는 국민이 편안히 잘 살고, 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통치행위이며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타협하는 일이라 일반 국민은 이해한다. 넓게는 우리 삶 자체가 항상 협상과 선택이므로 이 또한 작은 정치 행동에 속할 것이며, 그 정답이 없으면 차선책을 찾는 것이다.
헌법정신처럼 자유, 번영, 평화를 위해 국민과 국익만을 위한 토론장과 협상하는 정치 마당을 자주 보고 싶다.
조선 500년의 통치 이념이었고 유교의 한 갈래인 조선의 성리학(性理學)은 성인(聖人)들의 누누이 노력으로 훌륭한 학문이 되었다. 성리학은 유교적 예제(禮制)질서를 늘 강조하고 있다. 예는 예절 윤리이며 제는 제례 제도로서 이는 지금의 시스템(System)인 것이다.
* 그 나라의 정치 문화가 국민 수준이고 국력이다.
정부는 초등학교 때부터 정치 토론교육, 윤리 예절 교육을 필수 수학 하도록 해야 한다. 어떤 제도나 시스템이 영원하고 정석은 아니지만 사회 분열을 막고 협력 화합하는 토론문화, 교육제도와 인문학적 정신문화가 경제발전보다 더 소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남 이승만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團生散殺)’라고 자주 호소하였고 도산 안창호 선생도 죽는 날까지 단결과 청년교육을 강조하셨다.
국민의 삶이 행복하고 나라가 부강하고 사회가 안정될 수 있는 명품 제도는 없을까. 최근 정치 상황이나 사회 정서, 국민 감성 등을 보건대, "민주적 가치인 통합정치와 올바른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일찌감치 학교 교육에서 시작해야 한다”.